어찌 어찌하다보니 일년이 넘도록 블러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사람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힘들고 복잡한 일이겠지만, 펜션을 운영하면서 산다는 일도 참으로 어려운일이다. 시댁에 며느리 노릇도 해야하고, 친정집에 맏딸노릇하느라 부모님 모시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아들들에게는 엄마 노릇, 남편에게는 아내노릇하면서 산다는 일이 참으로 쉽지만은 않은것 같다. 또 나자신이 당뇨환자이다 보니 나 자신을 관리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처음엔 3개월도 못할것 같던 펜션일을 그럭 저럭 3년을 해오고 있으니 내스스로가 생각해도 대견하고 장하다.”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도 된다고 하면서 남편과 웃기도 한다. 그래도 펜션일에 적응을 하고 나니, 주말은 바쁘지만, 평일에는 남편과 둘이 얼굴 맞대고 하루종일 있는 일이 무료해졌다.
뭔가 보람있는 일도 하고 돈도 벌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때, 다문화센타에서 방문지도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서류응모에 면접을 보고 또 건국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지난 2월부터 다문화가정의 방문지도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는지 한달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정도로 바쁘게 지냈었다. 봉사에 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만날수 있는 현장이 즐겁고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라 좋다.
그러면서 펜션의 성수기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아주 막막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을 1명 구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읍내에서 픽업을 해 와야 하고, 점심식사를 제공해 줘야하고, 또 읍내까지 데려야 주어야 하는일도 번거스러웠다. 그래도 상냥하고 부지런한 남학생을 만나서 도움을 받아서 청소를 해내었다. 학생이 퇴근하고 나면 우리부부는 24시간을 근무하다시피 해야 하는것이 펜션의 성수기이다.
늦은밤이고, 새벽이고 따지지 않고 손님들은 필요시에 전화를 하고 요구를 하는데 펜션주인은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해 드려야 하기때문에 보통 피곤한일이 아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손 발이 마음과 달리 따로 따로 놀고, 입에서 쓴내가 날때쯤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도와 주러 왔다. 그 와중에 다문화 수업도 가야하니 몸이 세개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수업하러 갔다오면 큰아들이 세탁기를 돌려서 빨래를 널어 놓고, 또 마른 빨래를 거둬서 개켜 놓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작은 아들도 함께 도와주니 뿌듯하고 고마웠다. 고급 인력들에게 펜션의 잡일을 시켜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부모를 돕는다고 묵묵히 일해준 아들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물론 부모의 일이니 열심히했겠지만, 자식 키워 놓으니 이럴때 든든하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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